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 나에게는 그의 책이 2권있다. 하나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고, 또 하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다.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이미 오래전에 사둔책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의 경우 하드커버로 된 아주 두꺼운 책인데, 편집을 재미있게 해두어서 하루만큼 읽을 분량이 정해져있다. 그래서 아침에 톨스토이가 쓴 글이나 그가 초이스한 성경구절을 그날의 묵상거리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그가 지은 책은 제목만 들어도 정말 '확' 땡긴다. 말하자면 '섹시한 제목' 의 책이다. 제목을 잘뽑아야 글이 읽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은 열살짜리 아이부터 여든이 된 노인에게 까지 흥미를 유발시키는 질문이며 죽을때까지 고민해야 할 0순위 아젠다(Agenda)이다. 이런 제목의 책을 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것이다. 단순히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수준이 아닌 '왜 사는가', '뭣땜에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위해 무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을것이다. 고민을 풀어야 직성인 사람들도 그냥 하하호호 웃으며 살아가는걸 보면 아무리 고민해도 대답을 찾지 못하기에 그냥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불교에서는 자기를 스스로 구원하여 신이 되는것이 진리의 길이라고 말하고,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것이 인생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이런 인생의 '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면, 세상에서 아웅다웅 싸우고 바쁘고 복잡히 다니고, 웃고 떠들고 먹고 즐기는것들이 다 허무한 삽질인듯한 느낌이 들때도 있다. #_인생의 목표는 행복으로 가는길? 우리가 살면서 고민하는것의 대부분은 어떻게 '행복'의 길에 이를까에 촛점이 맞춰져있다. "어떻게 더 잘먹을까" "어떻게 돈을 벌까" "어떻게 부자가 될까" "어떻게 집을 살까" "어떻게 더 재미있게 놀까" 그런데, 인생의 진리를 말하는 불교나 기독교의 교리에 따른다면, 해답은 쉽다. 세상과 단절하고 절에 들어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것'을 깨닫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정해진 길을 걸어가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의 보좌옆으로 가면된다. 하지만, 요즘 종교는 그런 근본적 교리나 구도의 길과는 다르게 오히려 생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나님께로 가는길, 열반으로 가는길을 이야기 하지 않고, 어떻게 더 복을 받고 행복한 삶을 살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고, 어떤이가 그 종교를 믿은후 더 잘 살게 되었다는 말에 감복하고 눈물을 흘린다. 가끔씩 우리에겐 이런 냉소적 물음이 찾아오기도 한다. "시험 100점 맞아서 뭐해.." "좋은 직업 가져서 뭐해.." "이렇게 돈 벌어서 뭐해.." "이렇게 부자가 된들 무슨 소용이야.." 누구의 고민이고, 모두의 고민이다. 어떤 대답이 정답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 대답을 제시하기 위해 여러 컨텐츠들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런 책이나 방송, 연설, 강의도 알고보면 자신이 먹고 살기위함이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모두가 '잘살기'원하고 '행복하기' 원하는것이다. 인생을 말하자면 단순하다. 즉, 행복하고 싶어 바둥대는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어려운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어려운것이다. 그 해답을 찾기위해 어려운 수학보다도 복잡한 여러가지 해법들이 제시되는것이다. 그 누구도 정답을 찾지 못한 이유는 그 길 끝에 '죽음'이라는 대단한 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강을 건넌 사람은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돌아와서 전해주면 좋으련만.. 인생이란? #_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했던것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는 하나님에게 벌받은 천사 미하엘의 이야기가 나온다. 두아이를 둔 여자의 목숨을 거두러 왔던 사자 미하엘은 남편을 잃어 아이를 키울사람이 없다는 여자의 하소연에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돌아갔다가 벌을 받고 땅으로 떨어진다. 인간 세상에 온 미하엘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제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수많은 고민으로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해답은 그의 고민과 다른곳에 있었다. 자신만큼이나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찬 가난한자의 도움으로 그는 동사(凍死)의 위기를 모면한다. 여기서 첫번째 해답이자 톨스토이가 말하려 했던 핵심메세지가 나온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로 '사랑'으로 살아간다는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에 의해 살아간다는것이다. 그리고 소설중에서 미하엘이 반드시 알아야 했던 또하나의 의문인 '사람은 무엇을 할수 없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인 '죽음'도 인생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 빠져서는 안 될 요소이다. 즉 사람은 자기가 고민한다고 잘 살아갈수있는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살수 있는것이고, 아무리 잘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바로앞의 내일을 장담할수 없는것이 바로 사람이란것이다. 왜냐하면 '목숨'은 '하나님'에게 있기때문인것이다. '자기구원'을 말하는 불경과 달리 성경의 핵심은 '사랑'이다. 예수가 세상에 온 이유는 다른데 있는것이 아니다. 예수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 왔다. 그 사랑이란것은 '사람'안의 '사랑'이다. 예수가 이야기 하는것은 우리안에 '사랑'이란것을 잃지 말라는것이다. 예수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이다. 예수는 심지어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신이 있을수 있음에 감사하라는 말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같이 남에게도 사랑을 전하라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말하는 세상사의 진리다. 이 간단한 룰만 지켜진다면, 세상에 해결되지 않을 일이 없다. 우리안에 얼마나 미움, 시기, 질투, 다툼이 있는가. 누군가가 사랑을 실천한다고 되는것이 아니다. 모두가 사랑이라는 룰을 지켜야 한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대단한 성인군자도 아니고 한쪽에서 치고 나오는데, 어떻게 사랑으로 감싸줄수 있으랴. 하지만, 이런 자신을 돌아보는것이 바로 회개며 묵상이고 자기수행이다. 묵상은 자신의 존재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남의 눈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내가 어떻게 존재하느냐를 깨달을때, 내안에 '사랑'이 없음을 시인하게 되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룰'이 깨진후의 '세상'은 너무나 까칠하다. -원본출처- http://blog.empas.com/mjkcos/1788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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